파리, 느긋한 오후와 처음 본 유럽 축구

어제 조금 무리했던 탓인지 이날은 오전을 느긋하게 보내기로 했어요. 바로 나가기보다 먼저 마트에 들러 3일치 장을 보고, 점심도 숙소에서 해결한 뒤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저녁에는 생애 처음으로 유럽 리그 경기를 보러 가야 하는 날이었어요. 늦게까지 이어질 일정이 예정돼 있었던 만큼, 낮에는 체력을 아껴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심은 밖에서 사 먹지 않고 어제 마트에서 사온 트러플 리조또를 꺼냈어요. 50% 할인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반값에 산 건데, 기대보다 훨씬 맛있고 든든하더라고요. 반값에 산 것치고 꽤 괜찮았습니다. 여행 중엔 이렇게 별것 아닌 데서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어요.
🏛️ 개선문과 파리 거리
이날 낮에는 파리에서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개선문과 에펠탑 쪽으로 가보기로 했어요. 숙소가 외곽 쪽에 있다 보니 늘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했고, 시내까지 가는 데만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개선문 앞에서 사진도 찍고 영상도 남기고 있었는데, 마침 처가에서 연락이 왔어요. 덕분에 개선문을 배경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부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개선문은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묵직했어요. 광장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열두 개의 도로도 인상적이었고요. 예전에는 그 모양 때문에 에투알 광장이라 불렸고, 1970년부터는 샤를 드 골 광장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도 지금도 에투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이 문은 프랑스군의 승리와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나폴레옹 1세의 명령으로 세워졌습니다. 공사는 1806년에 시작됐지만, 나폴레옹의 실각과 왕정복고, 7월 혁명 같은 격변기를 지나면서 1836년에야 완성됐다고 해요. 정작 나폴레옹은 1821년에 세상을 떠나 완성된 개선문을 보지 못했고, 그의 유해가 1840년에 이 아래를 지나 파리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이후에는 제1차 세계대전 무명용사의 묘가 이 아래에 자리하게 됐고요.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그냥 큰 문 하나를 보는 느낌과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 파리시립현대미술관
개선문을 보고 난 뒤에는 에펠탑 쪽으로 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어제에 이어 이날도 하늘이 흐렸고 바람이 꽤 차가웠습니다. 이런 날엔 괜히 밖에서 오래 버티는 것보다 실내로 들어가는 편이 낫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급히 방향을 틀어 무료 입장이 가능한 파리시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작은 해프닝도 있었어요. 처음엔 바로 옆에 있는 팔레 드 도쿄를 파리시립현대미술관으로 착각하고 들어갔는데, 내가 생각한 곳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고 전시도 전부 유료여서 그제야 잘못 들어왔다는 걸 알았어요. 다시 나와 바로 옆 시립미술관으로 갔고, 결과적으로는 그 선택이 꽤 괜찮았습니다. 날씨 때문에 급히 넣은 일정이었는데도 피카소 작품이 있었고, 현대 작가들의 작업도 다양해서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어요. 실내에서 잠시 쉬어 가는 느낌도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 에펠탑, 다음에 또
미술관을 나와 다시 에펠탑 쪽으로 가봤지만, 이번에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어요. 비와 바람이 또 세차게 몰아쳤고, 아내도 너무 추워해서 오래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이날도 에펠탑은 제대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사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저녁을 먹으러 파리 생제르맹 홈구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Paris

Paris
그날 버스를 타고 가는 길도 조금 특이했어요. 창문이 열려 있어서 안이 꽤 추웠는데, 닫고 나니 뒤에서 기침하던 어르신이 박수를 한번 치며 뭐라 말씀하시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짧은 일이었는데 묘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원래는 따뜻한 국물 있는 걸 먹고 싶었는데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서, 경기장 근처 케밥집에서 저녁을 해결했어요.
⚽ 파리 생제르맹, 이강인을 보다
그리고 드디어 경기장으로 이동. 내 인생에 프랑스 1부 리그 경기를 직접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본 적은 있지만, 유럽 리그는 정말 처음이었거든요. 게다가 이강인이 뛰는 파리 생제르맹 홈경기였고, 팀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었어요.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경기장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도착해 보니 입장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웠어요. 표와 소지품 검사를 한 번 받고, 안으로 더 들어가서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경기장 입구에서 표 검사를 또 했습니다. 보안 검사를 세 번 정도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근처엔 경찰도 많았고 총을 멘 군인들도 보여서 처음엔 조금 긴장됐어요. 그래도 불안한 상황이 생기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랐어요. 직접 들어가 보니 소리와 열기가 훨씬 크게 느껴졌습니다. 파리 홈구장답게 응원 열기도 엄청났고, 경기 시작 전부터 관중석의 열기가 꽉 차 있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강인이 선발로 나왔어요. 그 순간은 정말 신기했습니다. 한국 선수가 파리를 대표하는 팀 유니폼을 입고, 그 큰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게 말이에요.
파리가 선제골을 넣자 관중석 분위기는 순식간에 더 뜨거워졌습니다. 현장에서만 느껴지는 에너지가 분명 있었어요. 이강인은 세트피스 상황마다 공을 맡는 장면이 많았는데, 코너킥이나 프리킥 때 올려주는 볼이 꽤 좋더라고요. 제 눈엔 거의 원하는 자리로 정확하게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한 번은 뎀벨레 쪽으로 정확히 연결된 장면이 있었는데, 한국 선수라 그런지 더 눈이 가더라고요. 경기 결과는 3대 1. 파리 홈구장에서 이강인도 보고, 팀 승리까지 함께 보게 돼서 만족감이 더 컸어요.
🌙 돌아가는 길
경기가 끝난 뒤에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여 지하철역 쪽으로 이동했어요. 인파가 많긴 했지만 우리나라 출퇴근길처럼 밀치고 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각자 조심하면서도 막힘 없이 잘 흘러가더라고요. 덕분에 지하철에 바로 탑승했고, 이후 버스로 갈아타 숙소에는 11시쯤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하루였지만 돌아보면 생각보다 알차게 보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전엔 쉬고, 낮엔 파리를 조금 걷고, 미술관도 들렀다가, 저녁엔 처음 보는 유럽 축구 경기까지. 날씨는 끝까지 아쉬웠지만 이날만의 장면들은 또 분명히 남았습니다.
📍 오늘 만난 장소들
개선문 Arc de Triomphe — 나폴레옹이 명한 프랑스 승전 기념물, 12개 도로의 중심
에투알 광장 (샤를 드 골 광장) Place Charles de Gaulle — 개선문을 둘러싼 방사형 광장
팔레 드 도쿄 Palais de Tokyo — 현대미술 전시 공간, 시립미술관 바로 옆
파리시립현대미술관 Musée d’Art Moderne de Paris — 무료 입장, 피카소 등 상설 전시
파르크 데 프랭스 Parc des Princes — PSG 홈구장, 이강인 선발 출전 경기 관람
✏️ 끄적끄적 노트
• 프랑스 축구장 보안 검사가 3번이나 반복되는데, 그만큼 안전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총기를 든 군인이 있는 풍경은 낯설었지만 불안감보다는 안심이 앞섰어요.
• 날씨 때문에 급히 넣은 미술관이 오히려 이날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됐어요. 여행에선 계획대로 안 되는 순간이 때때로 더 좋은 기억을 남기더라고요.
✈️ 여행 팁
✓ 파리시립현대미술관 무료 입장 — 상설전은 항상 무료. 비 오는 날 실내 대안으로 좋습니다.
✓ 팔레 드 도쿄 ≠ 시립현대미술관 — 바로 옆이지만 다른 미술관. 팔레 드 도쿄는 유료이니 혼동 주의.
✓ PSG 경기 보안 검사 3회 — 소지품 검사 → 재검사 → 입구 표 확인 순서. 시간 여유를 두고 도착하세요.
✓ 경기장 접근 — 메트로 9호선 Porte de Saint-Cloud 또는 10호선 Porte d’Auteuil 하차.
✓ 반값 식료품 팁 — 유럽 마트에서 유통기한 임박 상품은 50% 할인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트러플 리조또 같은 고급 간편식도 저렴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경로
A Slow Afternoon and My First European Football Match
We’d pushed ourselves a bit hard the day before, so we decided to take it easy that morning. Rather than heading out right away, we stopped by the supermarket first, stocked up on three days’ worth of groceries, and had lunch at our place before setting out. Besides, we knew it would be a late night — we were finally going to see a live European football match — so it made sense to save our energy during the day.
For lunch, I pulled out the truffle risotto we’d picked up at the supermarket the night before. It had one of those half-price stickers on it, but honestly, it was surprisingly good. Sometimes, even a simple meal can feel special when you’re traveling.
The Arc de Triomphe and Parisian Streets
That afternoon, we set out for two places I’d really wanted to see: the Arc de Triomphe and the Eiffel Tower. Since our accommodation was on the outskirts of the city, we always had to rely on buses to get around, and it took about an hour just to reach the city center. When we arrived at the Arc de Triomphe, we took photos and recorded a few videos, and around that time my wife’s family called. It was nice to reassure them, with the monument in the background, that we were doing well.
Up close, the Arc de Triomphe felt even more imposing than I’d imagined. The twelve avenues radiating out from the center of the plaza were striking as well. It was commissioned by Napoléon I to celebrate France’s military victories. Construction began in 1806, but the monument was not completed until 1836, years after his death in 1821. Later, when his remains were returned to Paris in 1840, they passed beneath the arch.
Musée d’Art Moderne de Paris
After seeing the Arc de Triomphe, we planned to head toward the Eiffel Tower, but the sky was overcast and the biting wind never seemed to ease. So we changed course and ducked into the Musée d’Art Moderne de Paris, which we could enter for free. Despite being a last-minute detour, the museum turned out to be a wonderful stop. With Picasso works and a wide range of contemporary pieces, it was far more enjoyable than I had expected.
The Eiffel Tower — Next Time
We tried again for the Eiffel Tower afterward, but the weather still refused to cooperate. Rain and wind came down hard, and my wife was freezing, so we couldn’t stay long. We never really got a proper look at the tower. Instead, we made our way toward Paris Saint-Germain’s home ground for dinner.
PSG — Seeing Lee Kang-in Play
And then, at last, we headed to the stadium. I’d never imagined that I’d attend a Ligue 1 match in person. I’d seen an MLS match in the States, but European football was a genuine first for me. On top of that, this was PSG’s home game, Lee Kang-in was in the squad, and the team was sitting at the top of the league.
The walk to the stadium took about ten minutes. Security was much tighter than I’d expected — three rounds of checks, with police everywhere and armed soldiers standing guard. It was a little intimidating at first, but honestly, I’d rather have tight security than take any chances.
Once inside, the atmosphere was electric. The roar of the home crowd hit me like a wall, and the stands were already packed and buzzing well before kickoff. Then came the biggest surprise: Lee Kang-in was in the starting lineup. Seeing a Korean player wearing the jersey of one of Europe’s elite clubs and running out onto that massive pitch felt genuinely surreal.
When PSG scored the opening goal, the entire stadium erupted. There was an energy there that simply can’t be replicated through a screen. Lee Kang-in was involved in nearly every set piece, and his deliveries from corners and free kicks were impressive — precise and dangerous. The final score was 3–1. Watching Lee Kang-in play live and seeing PSG win at home made it an unforgettable evening.
The Way Back
After the final whistle, the crowd poured out in waves, and I followed the flow toward the metro station. Despite the sheer number of people, there was no shoving or chaos — everyone just moved along naturally. We made it back to our accommodation by around eleven. It had been a late start, but by the end of it, the day felt fuller and more memorable than it had first seemed.

